자연 그대로 제주食 ③
향토 미식 로드_꿩 메밀 칼국수
고기가 귀해 더 특별한 별식, 제주 흑돼지와 꿩
중산간 마을에선 추석이 다가오면
꿩 사냥을 나가 제수로 쓸 고기를 마련했다.
어려웠던 시절 단백질의 주 공급원으로 추석 상엔 구이로 올리고,
별식으로는 꿩 메밀 칼국수를, 보양식으로는 꿩엿을 해먹었다
변화무쌍한 제주 날씨를 견딜 수 있는 가축은 많지 않았다. 그중 소는 육지에서도 귀해 농사짓는 일 외에 고기로 먹는 건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이러한 연유로 제주에서 ‘고기’라 하면 으레 ‘돼지고기’를 칭했다. 제주 특유의 기후에 잘 적응한 재래종 흑돼지가 대표적인 식용 고기. 다음으로 찾은 건 날짐승 꿩이었다. 한라산 남쪽 야산에 살던 텃새로 서귀포에선 대표적인 사냥감이었다. 특히 중산간 마을에선 추석이 다가오면 꿩 사냥을 나가 제수로 쓸 고기를 마련했을 정도. 어려웠던 시절 단백질의 주 공급원으로 추석 상엔 구이로 올리고, 별식으로는 꿩 메밀 칼국수를, 보양식으로는 꿩엿을 해먹었다.
육고기 꿩과 구황작물 메밀의 치명적인 궁합 꿩 메밀 칼국수
꿩으로 우린 국물은 담백하고 깔끔한 풍미가 고기 육수 중 으뜸이다. 평양 진미의 대표 주자 평양냉면도 원조는 꿩 육수로 국물을 낸다. 기름기 없이 근육과 살코기로만 이뤄진 꿩고기는 잡내 하나 없는 것이 특징. 애써 한약재나 마늘, 생강 등을 넣지 않고 끓여도 투명하다 싶게 맑은 맛을 낸다. 흑돼지가 전부인 제주에서 야생 꿩은 없어서는 안 될 식재료였다. 요즘은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로 매년 11월에서 2월까지, 그것도 포획승인서를 받아야 꿩 사냥이 허용되지만, 지난날 제주에선 사계절 내내 꿩을 잡았다. 특히 음력 8월 초 꿩의 새끼가 장성했을 즈음이면, 연례행사로 ‘꿩사눙(꿩 사냥)’을 나가 추석 제물과 젖먹이들의 보양식을 마련했다.
툭툭 끊기는 면발을 숟가락으로 국물과 함께 떠먹으면
메밀과 꿩의 매력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다.
찬 성질의 메밀이 따뜻한 꿩고기를 만난 환상의 조합.
전통적인 향토 요리로 제주 사람이면 누구나 여전히 즐겨 찾는다
서늘해지는 겨울이면 제주도 중산간 마을에선 갓 사냥한 꿩으로 육수를 만들고, 메밀로 뽑은 짤막한 면과 뼈째 토막 낸 꿩고기를 넣어 뜨끈하게 꿩 메밀 칼국수를 끓여 먹었다. ‘호~호~’ 김을 불며 후루룩 당기는 맛은 막국수와 칼국수를 넘어선 일품요리. 젓가락질에도 툭툭 끊기는 면발을 숟가락으로 국물과 함께 떠먹으면 메밀과 꿩의 매력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다. 사실 제주는 강원도 못지않은 메밀 생산지. 메밀을 활용한 요리가 다양하고 풍부했다. 그중 꿩 메밀 칼국수는 찬 성질의 메밀이 따뜻한 꿩고기를 만난 환상의 조합. 전통적인 향토 요리로 제주 사람이면 누구나 여전히 즐겨 찾는다. 반면 손이 워낙 많이 가는 음식이라, 꿩고기 전문점에선 그저 구이나 코스 요리를 메인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더 많다.
100% 순 메밀가루로 국수를 뽑는 건 주인장의 자존심.
정직하게 지킨 구수한 맛은 꿩 육수에 시너지를 불러일으킨다.
<메밀꽃차롱>의 꿩 메밀 칼국수는 메밀 반죽부터 면 썰기, 꿩고기 손질부터 육수 끓이기 등 전 과정을 중산간지대 고씨 집성촌(교래리)의 전통 방식대로 재현한다. 100% 순 메밀가루로 국수를 뽑는 건 주인장의 자존심. 정직하게 지킨 구수한 맛은 꿩 육수에 시너지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무엇보다 맛을 좌우하는 건 육수. 꿩을 통째로 푹 삶아 건진 후 살은 발라놓고, 그 뼈를 다시 고기 삶은 물에 넣어 무와 다시마 등을 더해 은근한 불로 다섯 시간 정도 우려야 비로소 진국을 뽑을 수 있다. 준비된 육수에 얇게 찢은 꿩 살코기, 무채, 메밀면을 넣고 한 번 더 끓이면 완성. 이때 국수를 바로 저으면 면발이 끊어져 자연스레 익을 때까지 2~3분간 가만히 두는 게 좋다.
메밀가루가 더해진 국물을 한입 머금으면 입에 착 감기는 맛이
메밀 엑기스 같기도, 꿩 엑기스 같기도 해 배지근한 풍미가 끝내준다.
참기름 한 방울로 감칠맛의 정점을 찍고,
김과 참깨, 쪽파를 올려 끝까지 정성을 다한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맛의 포인트는 물에 푼 메밀가루. 마지막 단계에 살짝 부어 눅진한 국물을 만드는데 흡사 치킨스톡 같은 느낌. 메밀가루가 더해진 국물을 한입 머금으면 입에 착 감기는 맛이 메밀 엑기스 같기도, 꿩 엑기스 같기도 해 배지근한(제주어로 묵직하고 감칠맛 난다는 뜻) 풍미가 끝내준다. 양념은 제주답게 소금 간만 하는 것이 특징. 참기름 한 방울로 감칠맛의 정점을 찍고, 김과 참깨, 쪽파를 올려 끝까지 정성을 다한다.
꿩고기가 닭고기와 비슷한 식감이나 맛일 거라 함부로 추측하지 말자.
꿩고기의 육질을 경험해본 자만이
매일 같이 꿩고기 생각에 간절해질 수 있다.
꿩고기 특유의 찰기를 맛보려면 꿩 샤브샤브를 추천. 바글바글 끓어오른 꿩 육수에 1mm 두께로 얇게 포 뜬 꿩고기를 2~3초만 담갔다 빼면, 차지면서도 보드라운 식감에 흠뻑 취할 수 있다. 닭고기와 비슷한 식감이나 맛일 거라 함부로 추측하지 말자. 꿩고기의 육질을 경험해본 자만이 매일 같이 꿩고기 생각에 간절해질 수 있다.
Where to Eat?
메밀꽃차롱
A 제주도 제주시 연오로 136
T 064-711-6841
H 월-토요일 11:00-22:00
에디터 전채련 사진 윤동길